"이 글은 본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적은 글이므로, 사실 여부에 대한 일체의 논박을 거절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프지 않거나 사고를 당하는 일이 없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나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나 또한 불안장애를 2년 동안 겪으면서 '지옥문' 앞까지 갔다온 경험자로서 현재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나누려고 한다.

1. 불안장애 - 어디까지가 불안장애인가?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인간에게 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불안이라는 감정에 장애를 붙이는 순간부터 이는 곧 질병이 된다. 장애라고 일컬을 수 있으려면 불안이라는 감정이 더이상 컨트롤 될 수 없는 경우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예를 들면 불안한 마음이 들 때 TV를 보거나 운동을 하면서 그걸 잊으려고 노력할 때 곧 불안이 사라진다면 그건 불안장애가 아니다.

 

불안장애는 불안한 마음이 하루 종일 계속되거나,
혹은 어떤 순간 불안한 마음이 너무나 강력하게 밀려와서 본인이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거나,
가슴통증을 강하게 느끼거나 하여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적으로 영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될 경우'를
불안장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불안장애 - 나약한 정신력의 문제인가?

불안장애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있는데 그건 바로 불안장애가 나약한 정신력에 근거한다는 오산이다.
물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정말 여리고 여릴 때가 많아서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자신을 욕하는 말 한마디를 잘못 듣게 되어 그 한마디가 평생 가슴속에 상처나, 심지어 한으로까지 남는 경우도 있다. ​

하지만 불안장애를 단지 나약한 정신력에 그 원인이 있다고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다.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분비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신체의 자연적인 반응, 혹은 느낌인데....


이때 우리 몸은 과다한 코르티솔의 분비를 막기 위해(지속적인 코르티솔의 분비는 신체의 호르몬 밸런스를 망가뜨리고 장기적으로는 수면장애, 식욕장애, 호르몬 분비 이상, 성욕 감퇴 등 각종 부작용을 불러온다) 세르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을 분비하여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코르티솔이 어느 기간 이상 지속적으로 분비되게 되면 몸이 세르토닌을 더이상 효율적으로 분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오는데 이 시점이 바로 불안장애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

다시 말해 불안장애는 우리 몸의 호르몬 분비 기능 이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약한 정신력의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불안장애 - 견디면 나아질까​

불안장애는 초기 단계에서는 단순히 감정적인 부분의 통제 불능 수준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이 정도 '기분'쯤이야 견디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사람이 기분에 흔들려서야 되겠냐는 근거없는 가설(?) 같은 것.......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불안장애가 초기 단계의 감정적인 불안 상태에만 머물러 있으면 다행이고, 또 일상생활이 가능하겠으나
공황장애 전단계처럼 급속한 호흡곤란(호흡부족, 혹은 과호흡)이 오거나,
가슴의 통증이 갑자기 심해지게 되는 그 순간 만약 우리가 운전이나 다른 '안전에 위협이 되는 그 무엇'을 하고 있던 순간이라면....이야기는 달라진다.

위의 2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불안장애는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 아래에서 우리 몸에서 항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호르몬 분비의 기능이 무너진 것이기 때문에 견딘다고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또한 불안장애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게 된다면 곧 수면장애, 식욕장애, 성욕감퇴를 겪게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방치하게 되면 악몽, 환청 등을 듣게 되는, 말 그대로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

불안장애를 2년동안 온전히 극한까지 겪어본 내가 충고한다면
불안장애에 맞서지 마라.
당신 스스로, 외부인의 도움 없이 절대 불안장애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견딘다고 해서 절대 불안장애가 나아지지 않는다.

4. 불안장애를 다룰 때 알아야 할 사실​

불안장애를 다룰 때 알아야 할 사실이 몇가지 있는데 그건 불안장애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하게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므로 다소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전편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우리의 몸이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꽤나 오랫동안 버텨왔을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한두번의 불안함에 그렇게 쉽게 무너지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물론 극도의 불안과 트라우마를 겪을만한 큰 일을 겪었을 경우에는 한방에 몸의 면역기능이 무너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를 되돌아보면 나의 불안은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조금씩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지금 내 나이가 반백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족히 30년은 되었다는 것이다.
잔잔한 불안요소들이 항상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불안이라는 감정을 아주 얕게만 느껴왔었고, 때로는 그것을 긴장감으로만 인식하고 살았던 측면도 있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신경성 대장염이라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병증은 때로는 너무나 심각하게, 때로는 있는듯 없는듯 내곁을 서성이며 왔다갔다 했다.​

자신의 불안함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는지 돌아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보듬어 주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살아오느라 참 고생이 많았구나."

자신에게, 팔짱을 끼듯 자신의 몸을 스스로 안아주면서 스스로를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

 

5. 불안장애를 다룰 때 하지 말아야 할일 - 상담​

처음 불안감이 일어나기 시작할 즈음에는 상관이 없겠으나 '불안장애'라고 생각이 들 즈음에는 상담은 더 이상 아무런 효익이 없다.
그 이유는 내가 쓴 예전 글[불안장애를 다루는 법(1)]에서 설명했듯이 불안장애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이미 우리 몸의 호르몬 항상성이 모두 깨져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상담만으로 절대 원래대로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신경정신과 외래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빨리 낫고 싶은 마음에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내 인생에서 멋모르고 저지른....하마터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남을 뻔 했다.

불안장애에 이르게 되면 우리의 신경시스템이 극도의 불안한 상태, 언제 무너져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평상시라면, 그정도 상처나 슬픔, 아픔 쯤은 견디고 극복하여 넘어갈 수 있는 것들(심지어 이미 극복하고 넘어왔던 것들까지)도 그러지 못하고 그 앞에서 무너져내릴 수 있다.

 

멋모르는(?) 상담사를 만나서 나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상담사가 내 내면의 상처와 불안의 근원을 찾아 마음 속 상처를 헤집고 들어오는 순간, 그 상처와 슬픔, 아픔은 갑자기 증폭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쓰나미 그 자체가 되어 나를 삼켜버리게 된다. ​

난 어땠을까?​

뻔히 알고 있었던 그 상처가, 그 아픔이 한순간 엄청난 슬픔으로 내게 덮쳐왔고
난 사지가 마비되면서 눈이 돌아가고 과호흡이 몰려오면서 앞이 캄캄해졌다. 손발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만볼트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에 극심한 전율이 밀려왔다...
멋모르는 상담사는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지도 않았다.
데려가는 순간 상담사는 상담자격이 중지된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그날 난 '지옥문' 앞까지 갔다 왔고.... 호흡곤란 속에 죽음의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호흡곤란을 자가호흡요법으로 스스로 치료하고 빠져나오는데(정상적인 호흡을 하고 경련을 멈추는데) 4시간 꼬박 걸렸다.

당신이 불안장애라면 상담을 멈추라..
상담은 건강한 사람이 마음이 아플 때,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때 그럴 때 하는 것이다.
불안장애라면... 상담은 이미 늦었다.